아이가 받을 충격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 다른 가족에 대한 배려 등을 생각해서 정신 바짝 차리고 의연하게 참아내며, 조용히 이후의 일들을 알아보고, 차분히 예상하며 관리를 진행했어야 했겠지만 저는 그런 현명한 엄마는 애초에 근처에도 못 가는 사람이었어요. 대번에 무너져 내리고 물색없는 눈물만 끝도 없이 흐르는 그냥 엄마이기만 했답니다.
초진시 공복혈당 276을 듣고도 그게 정상인지 아닌지도 몰랐던 무지한 엄마.
“1형 당뇨인 것 같아요. 대학병원에 소견서 써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도무지 그칠 줄 모르는 눈물.
엄마가 울고만 있으니 옆에서 아무 말 못하고, 예약 없이 간 대학병원 그 긴 대기 시간을 그냥 말없이 기다리던 건우. 아침 공복에 가서 12시 반 다 되어서야 진료를 봤는데 배고프다는 말도 못하고 그저 엄마만 살피던 착하디착한 우리 건우.
입원실을 배정 받고 나서야 검색에 검색을 통해 도대체 1형 당뇨가 뭔지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검색된 정보는 죄다 너무 끔찍해서 마음이 무너지기만 했습니다. 주삿바늘이 가득 꽂힌 포스터, 아이도 부모도 너무나 힘든 병이다, 나쁜 말이란 나쁜 말은 다 써 있는 듯한 나무위키 정보.
예방 접종도 잘 못 맞는 우리 건우를 어째야 하나. 입원 기간 내내 눈물 또 눈물. 병실에서 숨죽여 울고 복도 구석에서 또 울고, 혼자 아무도 없는 야외 테라스에 가서 통곡을 하고. 엄마가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니 건우가 철이 들어 버렸나 봐요. 주사도 잘 맞고 병원에서 스스로 주사 놓는 것도 배워서 잘 해내고 검사한다고 무시무시한 두꺼운 바늘로 피를 몽땅 뽑아 가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더라구요. 그런 건우의 모습을 보고 또 가슴이 미어져 울었지요.
병원에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일정한 패턴을 알게 되니 이렇게 집에서 하면 되겠지 하고 퇴원을 했습니다. 그게 얼마나 속편한 생각이었는지 금세 알아차렸죠. 하룻밤만에.
퇴원하자마자 건우가 노래를 부르던 갈비를 과감히 배부르게 먹였습니다. 주사하면 되겠지 생각하고, 병원에서처럼 식전 3회, 취침 전, 새벽 3시 이렇게 5회 혈당 측정하면 된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혈당은 10시에 400이 넘어갔어요.
추가 주사하고 너무 떨어지는 건 아닌지 불안해서 못 자고 있다가 또 체크하고 아직도 높아 또 주사했어요. 건우는 재워야 하니 불 꺼진 방에서 스마트폰 불빛에 의지해 혈당을 체크했습니다. 잘못 찔러 다시 찌르며 미안해서 울고, 이러다간 손가락 하나하나 남아나지 않겠다 싶어 또 울었어요. 그렇게 밤을 하얗게 새우며 아무도 없는 작은방에 들어갔는데 숨이 막혀 오더라구요. 누울 수도 없고, 앉을 수도 없고, 가만히 서 있을 수도 없어서 방에서 계속 원을 그리며 걷고 또 걷고 가슴을 치며 어떻게 해야 하지? 이렇게는, 매일이 이렇다면 이렇게 살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방을 돌고 또 돌고.
그렇게 한숨도 못 자고 영혼이 나가 있는데 구세주처럼 전화가 왔어요. 1형 아이의 엄마고, 연속혈당측정기에 대해 잘 아는 분이라며 병원에서 연결해 준 분이었습니다. 퇴원 후 어떤지 궁금해서 전화하셨다고요. 운 좋게도 집 근처에 1형 선배님들이 여러 분 계셨어요. 그것도 오랜 시간 꼼꼼히 아이 혈당 관리해 오시면서 베테랑이 되신 분들이셔서 다 같이 나와 조언해 주시고, 연속혈당측정기 빌려 달아주시며 사용법도 세세히 알려 주셨어요. 1형에도 무지하지만 IT 신문물에는 까막눈이다시피해서 그것에 대한 두려움마저 있는 저에게 눈높이 교육을 해주셨습니다. 건우는 그렇게 퇴원 하루 만에 연속혈당측정기를 착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혈당을 눈으로 계속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어떻게 관리해야 될 지 알 수 없어서 튀어나오던 막연한 불안감들을 조금씩 다잡았습니다. 선배님들께 묻고 슈거트리 카페에 검색하며 혈당 관리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안정되어 가는 혈당을 보며 웃음을 찾아가고 복직도 하며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건우는 이 질병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고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5학년 때 발병했으니 멋모를 때여서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체념하고 받아들인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늘 울고 있는 제게
“엄마, 장애를 가진 것도 아닌데 괜찮아. 마음 약하게 먹으면 안 돼. 내가 관리 잘 할게. 강해져야지, 난 엄마가 더 걱정이야.”
오히려 엄마인 저를 위로하고 안심시키며 다독였습니다.
8월 1일 발병해서 입원해 있다 퇴원하고 나오니
“엄마, 벌써 나뭇잎이 물이 들었다. 세월이 정말 빠르네. 나도 좀 후회가 돼. 당뇨 걸리기 전에 실컷 먹고 신나게 놀 걸.”
이런 얘기를 밝게 웃으면서 하는 아이네요.
놀이터에서 친구가 팔에 달린 덱스콤 보며 뭐냐고 물어서, 친하지 않은 친구에게까지 설명하기 복잡해서 ‘자폭장치’라고 했더니, 친구가 떼어 주면 그네 한번 태워주겠다고 해서 안 된다고 했다고 하구요. 이럴 때 보면 또 애기지요.
혈당 관리에 조금 익숙해졌다 싶어 퇴원 후 먹었던 갈비집에 다시 도전. 8시간 후 359를 찍었습니다. 헉! 추가주사 몇 번에 밤새 지켜보고 아침에서야 안정된 혈당. 휴, 그 갈비집은 우리랑 안 맞나 보다, 하고 있는데 주말이니 남원 이모집에 놀러 가자며 남원 맛집을 검색하는 건우. 치즈 그라탕을 먹으러 가자고 합니다.
또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엄마입니다. 처음 먹어 보는 음식에, 기름져서 뒤끝 있을 것 같고, 탄수화물이 가늠이 안 되는데, 외지여서 대처가 잘 될까, 따질 게 많아집니다.
“건우야, 그거 너무 위험한 선택 같은데. 어제도 힘들었는데 또 그러고 싶어?”
“아이, 엄마! 더 위험한 짓을 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며 웃음지어 할말 없게 만드는 건우입니다.
고혈이어도 저혈이어도 천하태평 건우. 고저혈시 맞춰 놓은 알람 소리를 “띠리리 띠띠~~ 띠리리 띠띠~” 따라 부르며 고혈일 땐 “으음, 침대에서 뛰어 놀기 딱 좋은 혈당인데!” 저혈일 땐 “으음, 포도 먹기 딱 좋은 혈당인데!”하며 능청도 떱니다.
갑자기 쌍화살표가 뜨며 혈당이 껑충껑충 뛰어
“혈당이 왜 그러지?”물으니
“그러게, 저간을 너무 많이 먹었나?”합니다.
“저간?”
그건 또 뭐야? 뭐 이상한 거 먹었나 보다, 생각하다 아하 하하하 저혈간식,하며 웃기도 합니다. 그 뒤로 저희만 아는 은어가 되었네요. 저간, 저느(저혈느낌).
소심한 엄마라 소극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새로운 음식 도전해 가며 적당한 주사량 찾아가고, 건우랑 상의하고 타협하며 조절해 가고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가는 병원에서 늘 칭찬 받고 오는 건우예요.
그렇게 3년이 다 되어가고, 지금 힘들 수 있는 사춘기 중2도 무사히 지나가고 있는 듯해요. 말수가 많이 줄고, 뭔가 소프트한 건우에서 하드하게 바뀐 부분도 있지만, 학교에서 센서 저혈일 땐 엄마 걱정할까 봐 하트도 많이 보내 주고,
집에서 고혈일 땐 등 뒤에서 말없이 엄마 목 한번 꼭 안아 주고 운동하러 가는 건우입니다. 아! 반전은 운동이 집안에서 런닝 머신 타는 건데, 운동할 때는 유튜브 보는 걸 허용하니 운동하는 걸 너무 좋아해요. 일반 걷기보다 느리게 해 놓고 젯밥에만 관심 있으면서 혈당 180만 돼도, 의미심장한 얼굴로 엄마 운동해야 될 것 같은데, 한답니다. 으이구.
원래부터 단 걸 싫어해서 저혈간식이 먹기 싫은 건우. 안 먹고 버텨서 애를 태우기도 합니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해서 “그럼 뭐 먹을 거야?” 짜증내니 “게임을 할까(게임만 하면 혈당이 오르는 건우)?”하는 어처구니없는 녀석입니다.
발병 초기, 자려고 불 끄고 누워서 조용하다 문뜩
“엄마!”
“응?”
“우리 행복하게 살자.”
해서 또 뭐에 맞은 듯 눈물이 또르르 흘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는 진심으로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래 건우야. 우리 행복하게 살자!”
엄마가 많이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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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받을 충격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 다른 가족에 대한 배려 등을 생각해서 정신 바짝 차리고 의연하게 참아내며, 조용히 이후의 일들을 알아보고, 차분히 예상하며 관리를 진행했어야 했겠지만 저는 그런 현명한 엄마는 애초에 근처에도 못 가는 사람이었어요. 대번에 무너져 내리고 물색없는 눈물만 끝도 없이 흐르는 그냥 엄마이기만 했답니다.
초진시 공복혈당 276을 듣고도 그게 정상인지 아닌지도 몰랐던 무지한 엄마.
“1형 당뇨인 것 같아요. 대학병원에 소견서 써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도무지 그칠 줄 모르는 눈물.
엄마가 울고만 있으니 옆에서 아무 말 못하고, 예약 없이 간 대학병원 그 긴 대기 시간을 그냥 말없이 기다리던 건우. 아침 공복에 가서 12시 반 다 되어서야 진료를 봤는데 배고프다는 말도 못하고 그저 엄마만 살피던 착하디착한 우리 건우.
입원실을 배정 받고 나서야 검색에 검색을 통해 도대체 1형 당뇨가 뭔지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검색된 정보는 죄다 너무 끔찍해서 마음이 무너지기만 했습니다. 주삿바늘이 가득 꽂힌 포스터, 아이도 부모도 너무나 힘든 병이다, 나쁜 말이란 나쁜 말은 다 써 있는 듯한 나무위키 정보.
예방 접종도 잘 못 맞는 우리 건우를 어째야 하나. 입원 기간 내내 눈물 또 눈물. 병실에서 숨죽여 울고 복도 구석에서 또 울고, 혼자 아무도 없는 야외 테라스에 가서 통곡을 하고. 엄마가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니 건우가 철이 들어 버렸나 봐요. 주사도 잘 맞고 병원에서 스스로 주사 놓는 것도 배워서 잘 해내고 검사한다고 무시무시한 두꺼운 바늘로 피를 몽땅 뽑아 가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더라구요. 그런 건우의 모습을 보고 또 가슴이 미어져 울었지요.
병원에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일정한 패턴을 알게 되니 이렇게 집에서 하면 되겠지 하고 퇴원을 했습니다. 그게 얼마나 속편한 생각이었는지 금세 알아차렸죠. 하룻밤만에.
퇴원하자마자 건우가 노래를 부르던 갈비를 과감히 배부르게 먹였습니다. 주사하면 되겠지 생각하고, 병원에서처럼 식전 3회, 취침 전, 새벽 3시 이렇게 5회 혈당 측정하면 된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혈당은 10시에 400이 넘어갔어요.
추가 주사하고 너무 떨어지는 건 아닌지 불안해서 못 자고 있다가 또 체크하고 아직도 높아 또 주사했어요. 건우는 재워야 하니 불 꺼진 방에서 스마트폰 불빛에 의지해 혈당을 체크했습니다. 잘못 찔러 다시 찌르며 미안해서 울고, 이러다간 손가락 하나하나 남아나지 않겠다 싶어 또 울었어요. 그렇게 밤을 하얗게 새우며 아무도 없는 작은방에 들어갔는데 숨이 막혀 오더라구요. 누울 수도 없고, 앉을 수도 없고, 가만히 서 있을 수도 없어서 방에서 계속 원을 그리며 걷고 또 걷고 가슴을 치며 어떻게 해야 하지? 이렇게는, 매일이 이렇다면 이렇게 살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방을 돌고 또 돌고.
그렇게 한숨도 못 자고 영혼이 나가 있는데 구세주처럼 전화가 왔어요. 1형 아이의 엄마고, 연속혈당측정기에 대해 잘 아는 분이라며 병원에서 연결해 준 분이었습니다. 퇴원 후 어떤지 궁금해서 전화하셨다고요. 운 좋게도 집 근처에 1형 선배님들이 여러 분 계셨어요. 그것도 오랜 시간 꼼꼼히 아이 혈당 관리해 오시면서 베테랑이 되신 분들이셔서 다 같이 나와 조언해 주시고, 연속혈당측정기 빌려 달아주시며 사용법도 세세히 알려 주셨어요. 1형에도 무지하지만 IT 신문물에는 까막눈이다시피해서 그것에 대한 두려움마저 있는 저에게 눈높이 교육을 해주셨습니다. 건우는 그렇게 퇴원 하루 만에 연속혈당측정기를 착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혈당을 눈으로 계속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어떻게 관리해야 될 지 알 수 없어서 튀어나오던 막연한 불안감들을 조금씩 다잡았습니다. 선배님들께 묻고 슈거트리 카페에 검색하며 혈당 관리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안정되어 가는 혈당을 보며 웃음을 찾아가고 복직도 하며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건우는 이 질병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고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5학년 때 발병했으니 멋모를 때여서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체념하고 받아들인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늘 울고 있는 제게
“엄마, 장애를 가진 것도 아닌데 괜찮아. 마음 약하게 먹으면 안 돼. 내가 관리 잘 할게. 강해져야지, 난 엄마가 더 걱정이야.”
오히려 엄마인 저를 위로하고 안심시키며 다독였습니다.
8월 1일 발병해서 입원해 있다 퇴원하고 나오니
“엄마, 벌써 나뭇잎이 물이 들었다. 세월이 정말 빠르네. 나도 좀 후회가 돼. 당뇨 걸리기 전에 실컷 먹고 신나게 놀 걸.”
이런 얘기를 밝게 웃으면서 하는 아이네요.
놀이터에서 친구가 팔에 달린 덱스콤 보며 뭐냐고 물어서, 친하지 않은 친구에게까지 설명하기 복잡해서 ‘자폭장치’라고 했더니, 친구가 떼어 주면 그네 한번 태워주겠다고 해서 안 된다고 했다고 하구요. 이럴 때 보면 또 애기지요.
혈당 관리에 조금 익숙해졌다 싶어 퇴원 후 먹었던 갈비집에 다시 도전. 8시간 후 359를 찍었습니다. 헉! 추가주사 몇 번에 밤새 지켜보고 아침에서야 안정된 혈당. 휴, 그 갈비집은 우리랑 안 맞나 보다, 하고 있는데 주말이니 남원 이모집에 놀러 가자며 남원 맛집을 검색하는 건우. 치즈 그라탕을 먹으러 가자고 합니다.
또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엄마입니다. 처음 먹어 보는 음식에, 기름져서 뒤끝 있을 것 같고, 탄수화물이 가늠이 안 되는데, 외지여서 대처가 잘 될까, 따질 게 많아집니다.
“건우야, 그거 너무 위험한 선택 같은데. 어제도 힘들었는데 또 그러고 싶어?”
“아이, 엄마! 더 위험한 짓을 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며 웃음지어 할말 없게 만드는 건우입니다.
고혈이어도 저혈이어도 천하태평 건우. 고저혈시 맞춰 놓은 알람 소리를 “띠리리 띠띠~~ 띠리리 띠띠~” 따라 부르며 고혈일 땐 “으음, 침대에서 뛰어 놀기 딱 좋은 혈당인데!” 저혈일 땐 “으음, 포도 먹기 딱 좋은 혈당인데!”하며 능청도 떱니다.
갑자기 쌍화살표가 뜨며 혈당이 껑충껑충 뛰어
“혈당이 왜 그러지?”물으니
“그러게, 저간을 너무 많이 먹었나?”합니다.
“저간?”
그건 또 뭐야? 뭐 이상한 거 먹었나 보다, 생각하다 아하 하하하 저혈간식,하며 웃기도 합니다. 그 뒤로 저희만 아는 은어가 되었네요. 저간, 저느(저혈느낌).
소심한 엄마라 소극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새로운 음식 도전해 가며 적당한 주사량 찾아가고, 건우랑 상의하고 타협하며 조절해 가고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가는 병원에서 늘 칭찬 받고 오는 건우예요.
그렇게 3년이 다 되어가고, 지금 힘들 수 있는 사춘기 중2도 무사히 지나가고 있는 듯해요. 말수가 많이 줄고, 뭔가 소프트한 건우에서 하드하게 바뀐 부분도 있지만, 학교에서 센서 저혈일 땐 엄마 걱정할까 봐 하트도 많이 보내 주고,
집에서 고혈일 땐 등 뒤에서 말없이 엄마 목 한번 꼭 안아 주고 운동하러 가는 건우입니다. 아! 반전은 운동이 집안에서 런닝 머신 타는 건데, 운동할 때는 유튜브 보는 걸 허용하니 운동하는 걸 너무 좋아해요. 일반 걷기보다 느리게 해 놓고 젯밥에만 관심 있으면서 혈당 180만 돼도, 의미심장한 얼굴로 엄마 운동해야 될 것 같은데, 한답니다. 으이구.
원래부터 단 걸 싫어해서 저혈간식이 먹기 싫은 건우. 안 먹고 버텨서 애를 태우기도 합니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해서 “그럼 뭐 먹을 거야?” 짜증내니 “게임을 할까(게임만 하면 혈당이 오르는 건우)?”하는 어처구니없는 녀석입니다.
발병 초기, 자려고 불 끄고 누워서 조용하다 문뜩
“엄마!”
“응?”
“우리 행복하게 살자.”
해서 또 뭐에 맞은 듯 눈물이 또르르 흘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는 진심으로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래 건우야. 우리 행복하게 살자!”
엄마가 많이 많이 사랑해♥.
* 위 글은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에서 공유해주신 소중한 수기입니다. 글에 대한 저작권은 글을 써 주신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 환자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 <어느날 뜬구름> 홈페이지 이외의 채널에 글을 공유 하실 수 있습니다. 반드시, 글을 옮길 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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