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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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달에 한번씩 병원에 가는 날에는 약을 타는 것 뿐인데도 마음이 무거워져요. 병원 접수대 앞에 서 있으면, 제 이름에 HIV라는 글자가 붙어있는 걸 보게 돼요. 접수원들이 직접적인 얘기는 안 하지만, 내 정보를 보는 사람들이 내가 감염인이라는 걸 다 알고 있구나, 그런 참담한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런데 접수원들은 그런 거 못 본다는 애기도 있더라구요? 저는 제 이름에 HIV가 적혀있는 걸 분명히 본 것 같은데. 심리적으로 부담이 되니까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죠. 

 

 지금까지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요. 제가 HIV에 대해 무지해서 그런 걸까요? 솔직히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인식을 저도 저한테 가지고 있어요. 단 며칠이라도 지인들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되면, 먹는 것부터 컵 하나 쓰는 것까지 너무 신경이 쓰여요. 가까운 분들이랑 식사를 할 때, 술잔을 돌리거나 아니면 안주를, 찌개 같은 걸 같이 먹게 되잖아요. 지금은 아예 안 먹어요. 과학적으로 전염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제가 확진 판정을 받기 전에 가졌던 인식을 지금 나랑 가까운 사람들도 그대로 갖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그들이 객관적인 사실을 안다 해도, 내가 역으로 생각해봤을 땐 참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다시 직장을 다니게 되는 것도 지금으로선 두려워요. 직장 건강검진 때마다 마음이 힘들 것이고, 동료들과의 관계도 자신이 없어요. 그리고 젊을 때 많이 돌아다녀서 여행에 대한 별다른 욕구가 없었는데, 막상 이렇게 되고 나니까 제가 안 가봤던 곳도 가고 싶어지고 그래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감염인이라고 해서 해외여행을 못 갈 것도 없을텐데, 뭔가 제약이 있을 것 같고.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할게요. 감염인으로서 어려운 거야, 이것저것 사람마다 개인적으로 다들 있겠지만, 내가 감염인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든, 이런 면은 이전의 나보다 나아졌다고 생각되는 게 있나요? 감염인이 되기 전보다 오히려 더 괜찮아졌다, 이런 게 있습니까? 저는 지금 그런 걸 찾고 있거든요. 나를 긍정할 수 있는 근거, 나의 쓸모 같은 것 말입니다. 

 

※ 이 글은 KNP+가 펴낸 감염인 스토리북 <선물>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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